역(閾)·SCAPE

“역(閾)·SCAPE”

2012. 10. 24 - 10. 30 인사동 갤러리룩스

만남의 눈길
-박현진의 사진작품들을 보고

<정대현 -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박현진은 나의 사진 선생님이다. 스승의 작품들을 많이 보아왔지만, 이번 작품들도 강렬하고 신선하였다. 그래서 좋았다. 그리고 감상문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얼굴사진” 몇 장 그리고 “자연사진” 몇 장. 이게 무엇인가? 이게 어떻다는 것인가? 두 소재는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가? 두 소재는 독립된 전시회로 표현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연결 고리 없이 감상문은 어떻게 쓸 수 있을 것인가? 통합적 주제 없이 어떻게 전시회를 열 것인가? 단일 주제 없이 어떻게 글을 쓸 것인가? 
“만남의 눈길!” 그 연결고리의 후보를 찾아내는 데는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것은 두 소재를 비교적 선명하게 연결 시켜 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남의 눈길”은 단순히 두 소재의 연결 고리만이 아니다. 이 화두는 박현진의 사진 철학의 내용으로 부상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지난 세월 동안 추적 해 온 사진 예술의 표적은 이 화두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화두라면 그의 예술이, 그의 사람됨이, 그의 지향이 들어나는 것으로 다가 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화두로 그의 작품들을 음미해 볼 만 하다.
박현진의 작품, 얼굴사진들은 두 렌즈 카메라로 찍은 것이다. 코닥의 스테리오 3D 사진기는 입체 사진을 위한 것이지만, 박현진은 두 개의 렌즈를 좌우 눈의 미간 거리 간격을 두어 구성한 카메라로 만들어, 인간 상호 관계의 시선을 찍는 것이다. 두 사람이 서로를 볼 때 한쪽 눈은 서로의 한쪽 눈에 닿지만 다른 쪽 눈은 상대방의 눈을 비켜간다는 사실에 입각해 만든 카메라이다. 피사체 사람이 카메라의 한 렌즈를 바라 볼 때 그 렌즈는 “시선의 관계 구성”으로 그 사람을 찍지만 다른 렌즈는 “시선의 관계 이탈”에서 그 사람을 찍는 것이다. 코닥 사진기와 박현진 사진기의 차이는 분명하다. 
두 렌즈 카메라의 얼굴사진은 많은 것을 함축한다. 그 중의 하나는 두 렌즈 카메라가 찍는 한 사람의 시선을 두 장으로 표현하면서 하나는 “만나는 눈길”로 찍고 또 다른 하나는 “보는 눈길”로 찍는 것이다. 만나는 눈길과 보는 눈길의 사진적 표상성은 중요하다. 시신경적으로 두 눈의 영상 맺힘의 방식과 독립적으로, 이러한 표상성은 눈이 “있는 그대로” 라는 거울 표상성에 대한 대안적 해석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표상성은 우리의 시각 경험이나 사진 경험이 주체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다. 
얼굴사진의 또 하나의 함축은 만나는 눈길의 정형화 가능성이다. 만나는 눈길은 두 눈이 만나는 데서 이루어진다. 두 눈이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이다. 두 눈은 싫건 좋건 간에 인격으로 만날 때 만나는 눈길을 얻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 관계는 시작될 수 없다. 10명의 사람이 함께 작품 모나리자를 볼 때에도 이들 모두가 모나리자를 만날 수 있는 것은 모나리자가 만나는 눈길에서 화가의 눈과 만났기 때문이다. 모나리자 효과는 만나는 눈길의 정형화를 보인다고 생각한다.
박현진의 작품, 자연사진들은 스마트폰으로 찍은 것이다. 사진 작가가 전문 사진기가 아닌 스마트폰을 사용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얼굴사진을 찍기 위해선 “두 렌즈 카메라”를 고안했지만, 이제 자연사진을 찍기 위해선 스마트폰을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이것은 한 종류의 카메라를 고안한 착상 만큼이나 중요한 사진 작품의 착상이라고 생각한다. 피사체의 소재에 따라 주제 구성의 방식이 달라지고, 이에 주목하여 카메라를 만들어 낸 작가에게는 기대할 수 있는 개념의 심각성의 전환이라 믿어진다.

그렇다면 이러한 착상의 전환에 개입한 스마트폰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이 어떻게 박현진의 작품 세계에 참여하게 된 것인가? 손목시계나 안경이 몸의 일부가 된 것 처럼 이제 스마트폰은 몸의 일부가 되고 있다. 더 나아가, 시계나 안경은 제한적으로 정보 보조적 이지만, 스마트폰은 보다 광범위한 정보처리, 의사결정, 기억과 판단 방식, 관계 구성에 개입하는 확장된 마음(D. Chalmers, extended mind) 이다. 그렇다면 스마트폰 카메라는 확장된 마음의 눈이다. 
박현진의 두 렌즈 카메라가 인간의 두 눈의 시선의 작용을 반영한 것이었다면, 그의 스마트폰 사용은 확장된 마음이라는 제3의 눈의 작용에 착안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3의 눈은 두 개의 눈, 육안과 연결된다. 육안은 직접적으로 인격적이다. 사람을 만날 때 일반적으로 육안으로 만나지 제3의 눈으로 만나지는 않을 것이다. 제3의 눈은 육안에 종속적이지만 그러나 기여하는 바가 있다. 육안이 놓치는 것,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하여 육안을 온전하게 하는 것이다. 박현진의 스마트폰 사진 작품은 이러한 관점으로부터의 수행이다.
박현진의 자연사진은 육안이 놓치기 쉬운 것을 보게 하고 만나게 한다. 연꽃을 만나게 하고 갈대의 의미를 보게 하며 잔디의 세밀한 연결에서 자연의 견고성을 이해하게 한다. 자연사진은 천연색의 인상으로서가 아니라 흑백의 탈색된 관념으로 다가 온다. 사진을 찍으면서 이미 추상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자연을 만난다는 것은 사물로서가 아니라 의미로서의 만남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만남 속에는 이미 선택과 지향이 들어 있어 자연이 인격처럼 나타나는 것이다. 선명하기 보다는 흔들리고, 선언적이기 보다는 함축적인데서 만남의 공간, 의미의 가능성이 들어서는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자연사진에서 추구할 수 있는 자연과의 만남의 조건들일 것이다.
이제야 물음이 풀리는 것 같다. 긴 세월을 침묵으로 지낸 사진 작가의 첫 개인전 작품들이 왜 “얼굴사진”이고 왜 “자연사진”인가의 물음이 풀리는 것 같다. “만남의 눈길”이라는 화두로 그렇게 오래 그렇게 진지하게 추구 해 왔다는 치열함이 보인다. 작가의 절제성이 나타나 있는 것이다. 자신을 향한 한 인간의 엄격함이 들어 있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광기의 산만한 시대에 얼마나 고집스런 단일 주제인가? 박현진은 “사진을 찍기 위해 여행하지 말라, 일상에서 새로움을 찾으라”라고 가르쳤다. 그는 자기 작품들로 그의 가르침을 또한 이렇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